Thursday, February 28, 2008

[영국느낌] 01 나누는 행복이 세상을 바꾼다


영국인에게 '자선Charity'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시내 곳곳에 있는 채리티숍Charity shop에서, 외국인에게 무료로 영어를 가르쳐주는 은퇴한 할아버지에게서, 밤새 술 마시고 놀고 나서도 그것이 자선 파티여서 더욱 즐거웠다는 발랄한 대학생에게서, 돋보기를 쓰면서도 식료품 점원으로 봉사하는 백발의 할머니를 보며 나는 영국인이 여기는 자원봉사와 자선활동에 대해 몇 가지 생각을 해 보았다.
아마도 영국에서 새롭게 터전을 잡은 새내기 이방인의 눈에 담긴 영국 문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이 자선정신이 아닐까 싶다.
영국인의 자선 행위에서 첫 번째 모토는 '주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대가를 받지 않고 남에게 주는 것에서 자선은 시작한다. 줌으로써 더불어 나눔의 행복을 누린다. 두 번째는 '돕는 것'이다. 내가 가진 물건, 재능, 그 밖의 하찮은 것이라도, 심지어 나의 늙음조차도 남이 필요로 한다면 기꺼이 긍정적인 마음으로 돕는다. 어린이와 노인, 실업자, 환자 등 약자들을 위한 사회복지제도가 비교적 잘되어 있는 나라이기에 어찌 보면 사회구성원들이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이곳 영국에는 도심 상가는 물론이고, 대학 내에도 채리티숍이 있다. 전국적으로 20 여만 개가 있다고 한다. 새로운 환경에 정착하려고 각종 살림살이가 필요한 신입생들이 자주 애용하는 곳이다. 접시와 포크에서부터 학용품과 옷 등 각종 생활 용품들을 무척 저렴한 가격으로 판다. 진열된 상품들은 모두 무료로 기부 받은 물건들이며, 점원들 역시 전원 자원봉사자들이다. 판매액은 채리티숍 운영과 다른 형태의 자선활동에 다시 쓰인다. 주요한 채리티숍의 간판에는 다음과 같은 자선단체의 이름이 적혀 있다. Oxfam, Cancer Research UK, Help the Aged, FARA Charity Shop.


영국의 ‘자선’에 대해 얘기할 때 빠져서는 안 될 사람이 있다. 고인이 된 다이아나 황태자비이다. 그녀에 대한 향수는 아직 대다수 영국인들의 가슴 한 쪽에 남아 있다.
지난 7월 1일, 런던 웸블리경기장에서는 다이아나 사망 10주년을 추모하는 자선 공연 'Concert for Diana'가 열렸다. 그녀의 두 아들 윌리엄William과 해리Harry가 준비한 행사였다. 고인이 된 엄마를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춤추고 노래했다. 6만 명이 넘는 관객이 입장 했고, 전 세계 1천 5백만 명이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시청했다고 한다. 콘서트의 마지막에 윌리엄은 이런 말을 했다. "For us, this has been the most perfect way of remembering her. And this is how she would want to be remembered." 다이아나가 이토록 영국인의 사랑을 받고 기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침 사진 촬영차 방문한 한 채리티숍에서 자원봉사하시는 할머니에게 가볍게 여쭤보았다. 가뜩이나 수다스러운 영국 할머니에게 다이아나에 대한 질문은 몇 시간이고 얘기할 수 있는 최고의 화두였다. 기다렸다는 듯이, 마치 다이아나가 옛 친구나 되는 양 마구 풀어내는 다이아나에 대한 추억담을 여기에 다 옮길 수는 없지만, 할머니의 답변에서는 다이아나가 대다수 영국 국민들에게 단순히 왕족의 여인이었기보다는 마음씨 따뜻한 자선의 천사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직까지도 매스컴에서 끊이지 않고 들리는 그녀의 스캔들은 유명인 ‘뒷담화’에 관심 많기로 악명 높은 영국인 특유의 가십거리에 불과한 것 같다.

내가 세 번째로 느낀 영국인의 자선 활동의 특징은 그것이 세상을 바꾸기 위한 작은 노력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남에게 무엇인가를 베푸는 행위로 인해 생기는 소소한 관계들은 자발적인 것이기에, 자선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창조하는 즐거움과 그로인한 변화를 무척 긍정적으로 수용한다. 이는 “문화적 전염”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어느 악덕 부자의 선언은 세상을 바꿀 작은 밑거름이 되기 힘들다. 소박하고 순수한 자선의 정신에 어울릴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행위에는 기부자의 창조적 정신이 담겨 있지 못하고 자선의 정신을 돈으로 단순 치환하는 미천한 자본주의의 상흔이기 때문이다.

주변에 올해 연세가 75세가 되신 영국 할머니가 주변에 계신다. 국가가 지급하는 연금으로 생활하는 그 할머니는 매주 월요일 오전이면 외국인 주부들 몇몇을 집으로 초대해서 영국의 문화에 대해, 더 나아가 다문화 사회에 대해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공감하는 시간을 마련하신다.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잘한 지역의 생활 정보를 얻어가기도 하고, 자기 나라의 고유 음식을 소개하면서 함께 만들어보기도 한다. 할머니는 정한 시간이 되면 직접 운전을 하면서 자가용이 없는 가난한 외국인 손님들을 일일이 자기 집까지 데리고 온다. 이런 번거로움이 귀찮을 법도 한데, 할머니는 항상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머나먼 이국땅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친절을 베푼다.
무슨 거창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다. 다만 이 작은 자선의 관계가 더 큰 자선의 정신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그 할머니를 움직인다.

‘global village’라는 단어와 그로 인한 변화는 우리가 진정 감당해야할 것들을 만들어 놓았다.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인해 외형적으로 비대해져가는 절름발이 성장으로 고민하고 있는 우리 사회 역시 그런 과제를 피할 수 없다. 이른바 선진국이라는 영국에서도 거대한 다문화적/다인종적 변화를 겪고 있다.


법과 행정만으로, 능숙한 금융 운용으로도 메우지 못할 수많은 틈들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틈들 주변에는 오랜 세월 영국인들의 문화 한쪽에서 커가고 있는 자선의 정신과 그 정신의 네트워크가 자리한다.

영국이 그저 '영어의 나라'여서, 왕년의 거대 제국이어서 부러움과 투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선’이라는 문화의 내공이 시스템화되어 있는 이들의 정신적 저력이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1 comment:

Anonymous said...

영국에 이런 면이 있었군요 다음에 영국가면 주의깊게 '느껴'봐야겠습니다. 좋은 글 계속 올려주세요. 근데 드래그가 안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