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글. 김우창 고려대명예교수
미국은 도덕적 부패·제3세계는 편협한 도덕…조승희의 과대망상은 선-후진국 갈등과 비슷보도를 보면, 17일에 버지니아 공과대학에서 일어난 엄청난 참극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사에 부시 대통령과 수천 명의 학생과 시민이 참석하여 애도했다고 한다. 우리도 이 애도를 함께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 사건이 한국 출신 학생이 저지른 것이었다는 사실은 희생자와 그 가족의 슬픔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더욱 깊이 느끼게 한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재미 한국 이민자의 안전을 우려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크게 걱정할 만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나 세계적으로나 이 사건이 한국의 이미지를 손상할 것임은 틀림이 없다. 〈뉴욕 타임스〉는 버지니아 공대에서 가르치고 공부하던, 미국, 루마니아, 페루, 퀘벡, 인도, 중국 등 여러 나라 출신의 교수와 학생들이 한 한국 태생의 학생 손에 목숨을 빼앗겼다고 보도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이 사건과 관련하여 황우석 사건, 여중생 탱크 치사 사건과 관련된 반미시위, 스포츠 열기, 1982년 희생자 58명을 낸 경남 의령의 경찰관 민간인 살해 사건 등을 상기하고 있다. 한국인의 성급함, 집단주의, 과격성 등을 기억해내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신문은 그간 계속적으로 한국에 대한 보도를 확대해 왔다. 거기에는 한국이 문명세계의 다른 나라와 같은 정상적인 국가라는 전제가 들어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 전제가 달라지는 듯한 인상을 준다.
여덟 살에 이민하여 그 후 15년을 미국에서 성장하고 교육을 받은 청년을 한국인이라는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국내 신문은 물론 외국의 신문도 그러한 점을 부각시키는 감이 있어서, 이것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사건에 두 이질적인 문화의 간격에 사로잡힌 한국 이민자의 문제가 끼어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 우리로서는 희생자와 함께 가해자가 처했던 어려움에 대하여서도 동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건을 이해하려면, 사건을 일으킨 조승희 군의 동기를 알아야 할 터인데, 그것을 분명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처음에 수수께끼였던 것이 이제는 조금씩 풀려가는 느낌이다. 처음에 나온 보도에서, 그를 집단 살인의 엄청난 범행을 저지르게 한 직접적인 동기는 사귀던 여자 친구가 그를 배반하고 다른 연인을 가지게 된 것에 대한 분노였다고 한다. 그 이후 보도는 이것이 별 근거가 없는 것이라는 설을 내놓았다. 그보다 남학생이든 여학생이든 전혀 사귀는 친구가 없는 외톨이였던 것이 문제점이었던 것으로 이야기된다. 그의 심리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는 다른 보도는 영문학과 학생이었던 그가 문예창작반에서 썼던 작품들이 극히 어두운 내용을 가진 것이었다는 점을 들추고 있다. 작품의 하나는 젊은 주인공이 자기 친아버지를 죽였다고 믿는 의붓아버지를 살해하는 내용의 것이라고 한다. 창작반의 지도교수는 그가 제출하는 작품들이 너무나 폭력적이고 병적인 내용을 담은 것이어서, 그 사실을 학과장에게 보고하고 이 학생을 계속 가르쳐야 한다면, 자신이 사표를 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고 한다. 창작반 교수 니키 조반니는 널리 알려진 흑인시인이다. 그녀의 시에는 가난과 인종차별의 문제를 다룬 것이 적지 않다. 조군의 작품 내용이 어지간한 것이었다면, 조반니 교수는 그렇게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또 다른 사실들이 그의 마음 상태를 드러내준다. 공책에 쓰인 글에 , “돈 많은 애들,” “퇴폐,” “젠체하는 사기꾼들”과 같은, 버지니아 공대 학생들을 타매하는 말들이 있고 “이런 놈들을 죽이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단편적인 보도들로 하나의 가상적인 투시도를 만들어 보면, 그는 여자친구에 배반당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버지니아 공대 또는 미국 사회 전체의 도덕적 부패의 책임으로 돌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내밀한 인간관계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그가 미국 사회를 부도덕한 것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징벌하여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중 들어온 소식은 이러한 생각이 일시적인 발작 상태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오래 마음에 지녔던 것이라는 증거가 드러난다는 사실을 전한다.
그러나 여자친구 관계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사회가 한 사람의 행동과 삶의 궤적에 대하여 안다는 것은 극히 힘든 일이다. 그의 행동 방식 자체는 한 사람의 배반과 사회를 연결시킨 결과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의 생각에 크게 잘못된 것은※그의 생각을 심각하게 취한다고 할 때 사회 전체에 대한 판단과 느닷없는 사람들을 하나의 인과관계로 묶어 놓은 것이다. 오사마 빈 라덴이 부시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책임을 물어 미국인은 누구든지 살해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한 것처럼 그는 전체 상황에 대한 결론으로 일정한 개인들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 정당화된다고 생각하였다. 그의 팔에 쓰여 있던 ‘이스마일’은 허만 멜빌의 〈모비 딕〉에서 침몰한 포경선 피코드호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선원 ‘이슈밀’일 수 있다. 피코드는 흔히 자본주의 기업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조군은 이 배가 침몰할 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슈밀 또는 이스마일에게 자신을 비교한 것일까?
이러한 연관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망상의 한 뿌리가 분명 경직된 도덕주의에 있다는 사실이다. 버지니아 공대생이나 미국을 도덕적 타락이라는 눈으로 보게 하는 관점은 이미 그의 가정적 배경에 들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의 가난을 탈출할 목적으로 미국으로 이민하여 세탁소를 경영하여 생활의 기반을 잡고 아이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는 데 성공한 건실한 생활인이다. 그것은 희생과 피나는 노력의 결과였을 것이다. 조군은 이러한 집안에서 이미 엄숙한 인생철학을 습득하였을 것이다. 기숙사 동료들의 말로, 그는 으레 밤 9시에 자리에 들고 새벽 5시면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고 한다. 그에게 다른 학생들의 생활은 돈과 퇴폐와 거짓의 생활로 보였을 수 있다. 그러나 마음에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버지 살해를 내용으로 한 그의 연극은 아버지의 권위를 벗어나고 싶은 무의식적 욕구를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용적 도덕주의는 한국 이민의 태도 일반에서 발견된다. 영국에서 이민하여 미국에 정착한 작가 조나단 레이반의 책에 〈가슴 아픈 씨(氏)를 찾아서〉라는 미국 견문기가 있다. 거기에는 이민해온 한국인 이야기들도 들어 있다. 그가 만난 한국인은 조금도 한눈을 팔지 않고 일하고 돈을 버는 일에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들이다. 그는 이민자들 가운데 한국인이야말로 기독교의 노동윤리와 17세기 영국 이민의 청교도주의의 후계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 한국인 목사는 미국을 쾌락과 오락과 유혹의 나라라고 규탄하고 그의 사명은 한국 이민들이 이러한 미국의 부패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 성공한 사업가는 자기 딸이 미국인과 결혼하게 되는 것을 크게 걱정하고 그런 경우 딸을 죽여 버리겠다고 말한다. 레이반은 미국 사회를 별로 고운 눈으로 보지 않는다. 책 제목의 ‘가슴 아픈 씨’(Mr. Heartbreak)는 미국을 근면하고 성실한 자작농의 낙원으로 그린 18세기의 프랑스인 여행자 크레브쾌르의 이름의 뜻을 풀어 놓은 것이다. 오늘의 미국에는 크레브쾌르가 그린 농부보다 가슴을 아프게 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레이반이 일과 돈과 편견과 독선에 사로잡힌 한국 사람들을 곱게 보는 것은 아니다.
시야를 조금 넓혀 볼 때, 미국 사회를 부정적으로 봄으로써 자기를 정당화하고 방어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한국인만이 아니다. 이슬람 근본주의의 현대적인 시조로 간주되는 사이드 쿠트브의 정신적 각성은 그의 미국 견문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1948년부터 1950년까지 미국에 유학하고, 미국이 여러 가지로 부패한 나라라는 판단을 내린다. 세속적인 광고 전략을 사용하는 데 서슴이 없는 미국의 기독교 교회와 젊은이들의 문란한 성윤리는 그것을 입증하는 중요한 근거였다. 본국 이집트로 돌아간 다음 그는 이슬람형제동맹을 창설하여, 오늘날의 이슬람 근본주의, 그리고 그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그 연장선상에서 테러리즘의 정신적 토대를 놓았다.
소위 후진국의 사람들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을 도덕적으로 부패한 나라라고 보고, 선진국 사람들이 후진국의 사람들을 편협한 도덕주의에 빠져 인간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라고 보는 것은 오늘의 세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자기방어 이데올로기다. 이러한 시각이 많은 단순화와 모순을 포함한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도덕적 부패나 편협한 도덕주의가 어느 쪽에 더 많은지, 그리고 제국주의의 오만과 그 피해자의 왜곡된 심리, 어느 쪽이 더 사태를 보는 눈을 뒤틀리게 하는지※이것들을 정확히 가려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기는 하나 사실과 심리의 왜곡이라는 문제를 떠나, 개인이나 국가가 일정한 정신적 기율이 없이 오래 살아남을 수 없고, 편협한 도덕주의가 사람의 삶에서 관용과 평화를 빼앗아가는 것은 틀림이 없다.
한국인은 지금의 시점에서 이 두 가지 이데올로기 모순 속에서 심리적 사회적 갈등을 가장 강하게 겪고 있는 국민인 듯하다. 조승희 군의 정신착란 또는 망상은 이러한 갈등에 관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의 세계에 존재하는 여러 현실적 모순과는 별도로, 이러한 부질없는 이데올로기적 갈등에서 벗어나는 것은 한국인이 당면한 시급한 과제의 하나라 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세계의 모든 사람 앞에 놓인 세기의 과제이기도 하다.
Wednesday, April 25, 2007
버지니아총기사건에 대한 반응-김우창 교수
Monday, January 29, 2007
조승수 전 의원이 김문수 지사에게 쓴 편지
김문수 지사님께
지사님과 저는 두 번의 인연이 있었습니다. 92년 총선으로 해산된 민중당에서 함께 일했고, 17대 국회에서 1년 반 정도를 같은 공간에 있었습니다.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80년대 중반 제가 현장 노동운동을 시작할 무렵 이미 당신은 한일공업의 노조위원장을 지내신 전설적인 노동운동의 대선배였습니다.
민주노동당이 원내 진출했을 때 솟았던 두 가지 감정
92년 총선 후부터 93년 사이로 기억됩니다만 이른바 '중진자본주의론'이라는 문건이 운동권 일각에서 떠돌아다니면서 신랄한 비판을 받을 때 그 문건의 진원지가 지사님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한국경제는 달리지 않으면 쓰러지는 외발자전거'라는 운동권의 인식이 이미 현실에서 무너져 가고는 있었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현실인식을 보여주었던 문건이었습니다. 물론 이 논리의 수용여부와 실천적 방향은 별개였다고 생각합니다.제 짐작이 맞다면 지사님은 중진자본주의로 발전해 가는 한국사회에서 더 이상 민중운동은 의미가 없으며 민중당의 패배는 진보정당운동도 한국사회에서 불가능하다는 인식으로, 그리고 실천적 대안으로 신한국당을 선택하신 걸로 여겨집니다.
여기서 '왜 하필 신한국당이었냐'는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사님이 어떤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만일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같은 야당에서 먼저 영입제의를 받았더라면 그렇게 하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지사님에게 필요한 것은 지사님의 변화된 인식을 실현해줄 '현실의 힘'이 필요했고, 그 힘을 가진 보수정당이 그 수단이었을 것입니다.
저의 경우 92년 총선과 그리고 12월 대선 이후 민중후보의 초라한 득표력을 손에 쥐고 허름한 소주집에서 동료들과 잔을 기울이며 "도대체 우리가 무얼 잘못했어?"라며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습니다.그리고 나서 쉽지는 않을 거라는 각오를 다지며 진보정당을 통한 한국사회의 변화라는 앙상한 화두를 거머쥐고 버티기에 들어갔습니다. 짧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로부터 진보정당이 원내에 진입하기까지 10여년의 세월을 필요로 했습니다.
신한국당에서 국회의원을 하셨던 시절, 일 잘하고 똑똑한 국회의원 김문수이라는 세간의 평가와 변절자라는 운동권의 따가운 시선이 지사님을 따라다니던 그 즈음에 지사님이 "애니콜을 쓰면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하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는 우수한 국산제품에 대한 자랑을 넘어 지사님의 인식변화를 실감하게 해준 표현이었습니다.
17대 국회에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하면서 저도 지역구에서 당선되어 기쁨과 영광을 누렸습니다. 저는 그때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떠올랐고, 두 가지 감정이 솟았습니다.
하나는 생활고라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운동의 일선을 떠난 분들에게는 이 기쁨을 함께 누리지 못하는 짠한 마음이 들었습니다.다른 하나는 노선을 전환하여(운동권식 표현을 하면 '자본에 투항하여') 가버린 사람들에게는 '봐라! 우리가 결국 옳았다!'라는 통쾌함이었습니다. 다소 유치하다고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그랬습니다.
17대 국회에서 지사님의 존재를 새삼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역사상 초선이 가장 많았던 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으로 당선된 초선의원 특히 비례대표 의원들의 면면을 보면서 능력이나 자질면에서 한나라당의 국회의원들이 월등하다는 것이 눈에 띄였습니다.그 원인을 나름대로 추적하던 중 2003∼2004년 사이에 지사님께서 한나라당 인사영입위원장,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으셨고 철저한 원칙주의자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셨다는 뒷얘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수도권이라는 장점도 있었겠지만 지역구 관리에 아주 철저한 의원이라는 평판도 함께 들었습니다. 아무리 변신을 하였다 하더라도 곱지 않는 시선을 거두지 않는 수구세력의 둥지에서 생존을 위해 남 다른 각오와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지사님은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나는 왜 '합리적일 것 같은 보수'라고 하는가?지사님, 지금 이 나라는 매우 혼란한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애니콜이 상징하듯이 세계 11위의 경제력을 가진 나라라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있는가 하면 일자리의 절반을 넘는 수가 한 달에 100만원 받기도 어려운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농민들은 백배 양보해서 개방이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미래에 아무런 대책없는 농정에 절망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은 국가경쟁력의 위기를 넘어 이미 이 땅이 생존본능을 포기한, 인간이 살기에는 적절하지 않는 곳이라는 징표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분단이라는 우리의 운명적인 조건은 우리 의사와 관계없이 남쪽도 북쪽도 모두 패배자가 될 것이 자명한 전쟁의 위협이 한반도 주변에 먹구름처럼 깔려 있습니다.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권은 극단적이고 적대적인 권력투쟁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현실의 어려움 못지 않게 불확실한 미래에 더욱 절망하고 있습니다.이러한 현실을 초래한 절반의 책임은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민중운동·시민사회운동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기준이 세워지지 않았다고 해서 과거의 낡은 기준을 붙들고 안주해 온 진보세력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특히 2004년 총선에서 희망을 보여 달라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민주노동당의 책임은 어떤 변명으로도 면하기 어렵겠지요.그런데 진보진영의 책임이 절반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보수·자유주의자에게 절반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은 집권자유주의 세력의 책임을 거론할 수 있겠습니다만 오늘은 그들과 관련된 이야기는 저 아니라도 많은 사람들이 넘쳐날 정도로 하고 있기에 보수주의, 특히 지사님 같이 새로운 보수세력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제가 '새로운 보수세력'이라는 표현을 하였는데 이 말은 '운동권출신'을 가리키는 말은 아닙니다. 적어도 분단과 반공이데올로기를 무기 삼아 사적이익을 추구하는 집단과는 구별되는, 굳이 다른 말로 하자면 '합리적일 것 같은 보수주의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왜 '합리적인 보수'가 아니라 '합리적일 것 같은 보수'라고 하느냐고 하신다면 아직 합리적 보수는 집단으로서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력으로서 이른바 '뉴라이트'가 있지만 제 기준으로는 그 세력을 '집단'이라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합니다.그들의 주장에 과거의 보수와는 다른 신선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과거의 수구보수적인 느낌을 주는 모습들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왜 한국의 보수는 미국식 사회경제체제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는지요. 진보진영의 기준으로 보면 시장경제를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도 첨예한 논쟁거리입니다만, 지사님도 알고 계시듯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시장경제체제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그런데 유독 한국의 보수와 합리적일 것 같은 보수는 미국식 시장경제, 신자유주의만을 추종하고 있습니다.
무한경쟁, 효율성, 주주자본주의는 빈곤의 양극화와 대물림, 극단적인 이윤추구, 공공성의 파괴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성립할 수 없는 제도이기 때문이지요.보수는 왜 내용도 없는 구호로 국민을 현혹하고 있습니까? 이미 한국경제는 고도성장기를 지나 저성장, 구조조정기에 진입해 있습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경부운하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열차페리가 과연 과거의 고도성장시대로 되돌아갈수 있는 정책입니까? 백번 양보해서 그들의 주장대로 성공하더라도 그것은 하나의 성공한 정책, 일정 정도의 성장을 유지시키는 방안일 뿐입니다.사회·경제정책에서 사실은 보수주의와 조금도 다르지 않는 자유주의 집권세력의 실패로 인한 반사이익을 이러한 무책임한 공약으로 집권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입니까? 또 다시 국민들만 고통스러운 희생을 겪게 될 것입니다.
전 대표가 이번 대선을 두고 '잃어버린 8년을 되찾는 선거'라고 표현했을 때 이는 국가발전의 청사진을 놓고 국가의 운영주체를 선택하는 대선 본래적 의미는 사라지고 오직 권력탈환만이 본질이라는 것을 고백한 것이지요.
한국의 보수는 왜 최소한의 근대성을 갖추지 못합니까? 최근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민주노조운동이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도덕성의 문제와 정규직 이기주의는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KTX여승무원 문제나 비정규직, 중소사업장에서는 노조 설립조차도 어려운 것이 냉혹한 현실입니다.자본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은 보수의 처지에서 보면 당연할 수 있지만 헌법과 법률에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마저 짓밟는다면 그것은 보수가 아니라 파시즘입니다.'공익적 가치실현'을 경기도에만 한정하지 말기를...국민의 처지에서 보면 답답하고 무능한 진보세력이 보이겠지만, 제 처지에서 보면 절망스러운 보수가 눈에 보입니다.
저는 지사님이 이런 보수와는 다를 거라는 다소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과거 공통의 경험에서 연유한 동질성이 아니라 진보에서 자유민주주의로 사상적, 철학적 전환을 하셨지만 '공익적 가치 실현'을 여전히 신념으로 가지고 계신다고 하셔서 그렇습니다.저는 개인적으로 진보진영이 지사님을 '놓아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운동을 했던 사람이 한나라당에 몸 담고 있는가' '김문수가 저럴 수가 있는가'라는 질문은 이제 현실에서 큰 의미를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철학과 세계관을 바꾼 지사님이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 공익적 가치를 놓치지 않는 보수주의 정치지도자로 성공하시길 기대하겠습니다.어떤 일보다도 책임과 종합적인 판단을 요하는 도백(道伯)의 자리가 쉽지 않으실 것입니다. 지방의 구청장을 경험했던 저로서도 힘들었지만 보람있었던 시간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최근 뉴스에서 어떤 대기업의 경기도 유치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역 경제와 일자리를 위해 도지사가 할 수 있는 바람직한 보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지사님의 대수도론은 수도권 집중화와 악순환으로 피폐해져가는 지방과 장기적으로 국토의 균형발전 없이 국가의 발전도 담보할 수 없다는 점도 함께 고려하셔야 합니다. 현실정치인으로서 쉬운 문제는 아니겠지만 자신의 영역 안에서 단기적 이익에만 급급하는 정치인은 이미 너무나 차고 넘치고 있습니다. 지사님의 공익적 가치실현이 경기도에만 한정되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저는 진보세력이 앞으로 경제적 평등, 평화, 생태를 기치로 한국사회의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사님 같은 보수 자유민주주의와와 이런 화두를 놓고, 아니면 한국의 보수가 추구하는 이념적 방향과 미래 한국사회의 구상을 놓고 진지한 대화의 자리가 가능하기를 기대합니다.지사님의 건강과 건승을 기원합니다.
조승수
Saturday, January 27, 2007
차라리 '국민' 안하고 싶다는 한 시인
[한겨레신문]
몇 해 전, 1년여 간 긴 여행을 다녀오니 경고장과 함께 연체된 건강보험료에 대해 강제추징을 하겠다는 통지서가 와 있었다. 당장 목돈의 건강보험료도 부담이긴 했지만, 무엇보다 강제추징 통지서의 내용이 사람을 범죄자 다루듯 해 불쾌감이 컸다. 그때 처음으로 내 의지로 가입하지 않은 건강보험이란 것에 회의가 들었다.
나는 병원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감기나 웬만한 잔병 같은 것은 집에서 앓고 시간 속에서 견디는 편이어서 병원 가는 횟수가 극히 드물다. 언젠가는 내게도 크게 필요한 날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보험료를 내왔지만 긴 여행에서 빈털터리로 돌아온 그때의 형편을 감안하면 더욱 아까운 돈이었다.
그렇다보니 추징 경고장의 내용과 형식이 더욱 심화를 돋우고 급기야 보험 공단에 전화를 걸었더랬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강제 가입되었으니 연체금액은 물론 보험료를 납부하고 싶지 않다. 마치 세금 떼어먹은 사람 취급하는 경고장이 날아왔는데 건강보험이 강제로 내야 하는 세금이냐….
흥분해 묻는 나에게 돌아온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건강보험은 사회보험이고 국가에서 강제하는 준조세가 맞다는 거다. 보험료 안 내면 강제추징 하는 게 당연하다는 말을 들은 나는 할 말이 없었는데, 공단 직원이 점잖게 몇 마디 덧붙였다. 건강보험은 당장 내가 안 아파도 내가 낸 보험금이 가난한 사람들의 의료급여로 사용되는 일종의 공적부조, 사회보험입니다. 알 만한 분이 왜 이러십니까.
나는 멋쩍게 전화를 끊었다. 병원 혜택을 그다지 받지 않는 편이니 억울하다는 생각만 했을 뿐 내가 낸 돈이 가난한 이들의 의료혜택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던 터라, 스스로 공적부조의 필요를 인정하며 수화기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카드 할부로 보험료를 지불했던 그때로부터 꽤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아직도 이 나라에서 조세의 의무를 꼬박꼬박 지켜야 하는 이 ‘국민됨’에 종종 회의가 올 때가 있다는 것은 속일 수가 없다.
일 때문에 이주일에 한번 서울에 간다. 그때마다 산야를 난도질하는 각종 도로공사와 토목공사 현장에 내가 내는 세금이 들어가는 것 같아 마음 무거운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 행복에는 눈곱만치도 관심 없이 오로지 자기 이익과 정권 잡기에 혈안이 된 정치인들 월급과 품위유지비에 내가 낸 세금이 포함된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울화통이 터진다. 유령처럼 떠도는 ‘국익’과 ‘국민됨’에 한없는 회의가 들지만 참고 산다.
그런데 이 ‘참고 살기’에 절망하는 일들이 발생하곤 하는데, 최근 나는 또다시 중얼거리게 되었다. 아, 정말 세금 내고 싶지 않다… 라고. 티브이에서 한미FTA체결의 ‘국가적 정당성’과 비전에 대한 정부 광고를 본 날이다. 저런 광고를 만들어 ‘국민’들을 세뇌하는 데 바로 국민들이 낸 세금이 쓰인다고 생각하자 참을 수 없어졌다. 예전처럼 전화라도 걸어 따지고 싶었다.
이미 많은 국민들이 알고 있듯 한미FTA는 위험한 독배다. ‘주고받기’의 과정에서 우리가 받을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이 이미 드러나 있다. 그나마 정부가 내세우는 ‘성장동력 재구축’이라는 협상의 이점마저 아무런 데이터 없는 빈 말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모든 것이 막판까지 비밀이고 밀어붙이기인 것도, 지지부진한 협상과정에도 불구하고 결국 고위급 차원에서 협정체결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분위기 조성을 하고 있는 것도 모두 기분 나쁘다. 그러니 나는 내가 낸 세금의 털끝만큼도 저런 광고를 만드는 데 쓰이는 것을 동의해 줄 수가 없다.
이런 판국에 정말이지 나를 열받게 하는 소식이 또다시 들렸다. 한미FTA 최대 희생물이 될 농민들이 푼푼이 ‘나락 모으기’ 운동을 벌여 마련한 성금과 영화인들의 제작지원으로 만들어진 한미FTA 반대 광고 ‘고향에서 온 편지’가 광고심의기구의 ‘조건부 방송가’ 판정을 받으며 사실상 방송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정부광고’는 되고 ‘국민광고’는 안 되는 이 기묘한 판정이 ‘국민참여정부’라는 이천 년대의 우리의 현실인지 한숨이 나온다. 도대체 ‘정부’는 ‘국민’의 무엇인가. 다시 물을까? 도대체 ‘국민’은 ‘정부’의 무엇인가. 국민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제멋대로 날뛰는 정부를 예전엔 독재정권이라고 했던가. 국민의 입과 귀를 강제로 가리는 역할을 하던 각종심의기구들을 독재의 하수라고 예전엔 불렀던가. 오로지 예전에?
박종철이 고문사한 지 20년이 흘렀다. 겨울에 그는 죽었다. 그리고 그해 여름 ‘유월 항쟁’의 ‘국민’들이 독재타도와 민주쟁취의 함성으로 거리를 메웠다. 대한민국은 그렇게 아프게, 조금씩 바뀌어 왔다.
그런데 오늘, 도대체 무엇이 바뀌어왔나를 되물어야 하는 현실 앞에서 막막하다. 이 정부를 보는 일이 분노를 넘어 안쓰럽기까지 하다. 미국 쪽의 일정으로 4월 이전에 한미FTA 체결여부가 결정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에 들씌워진 것일까. 입으로는 미국에 대해 ‘자주’니 ‘자존심’이니 내세우며 거친 폼을 잡으면서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은, 이라크 파병이나 미군기지이전, 소파협상, 무기구매 등이 다 같은 맥락의 꼴불견 아닌가.
한미FTA가 나와 내 이웃들의 살림을 파탄낼 것이 자명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인 나는 조건이 안 맞으면 체결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협상 아닌가 하고 묻는다. 그게 아니라면 ‘국민’인 나를 설득해 보라. 내 속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 국민 안 하면 안 됩니까? 국민의 여론일랑 관심 밖인 정부광고 말고 고향의 어머니 아버지들 목소리를 전하는 광고에 세금 내고 싶습니다. 여름의 항쟁처럼 봄의 항쟁을 위해 세금 내고 싶습니다.
김선우 / 시인
Sunday, January 14, 2007
Saturday, January 06, 2007
연말과 새해 표정
새해가 밝은지 1주일이 지나가고 있다.
크리스마스는 12월 25일인데
이곳의 tv와 쇼핑가에서는
10월부터 세일 광고와 크리스마스 장식에 열을 올린다.
대체로 크리스마스전에는 20-30%를, 크리스마스 이후부터
1월 마지막주까지는 거기에 10-20%를 더 세일한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세일이 시작된다.
이곳의 크리스마스는
서울과 사뭇 다르다.
가족과 연인이 함께하는 조촐하고 오붓한 분위기가 대세다.
많은 친지들이 모여서
서로 준비한 선물을 교환한다.
값은 대체로 10파운드를 넘지 않는다.
대부분의 선물의 가격대가 그렇다.
동네 마트에서 파는 작은 초콜렛 하나라도
이쁘게 포장하여 카드와 함께 건네면
그보다 더한 소중한 선물이 없다고 느낀다.
크리스마스때에는 정말 많이 먹는거 같다.
마트에서 카트에 담기는 음식을 보면 기가 차다.
그도 그럴것이
크리스마스 전후로 음식 장 보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한꺼번에 많이 사는지도 모르겠다.
칠면조를 사서 속에 양념을 하고 오븐에 구어서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와인과 곁들어 먹는다.
그리고 거실에 크리스마스 트리 주변에 둘러앉아
덕담을 주고 받으며 아이들에게 선물보따리를 푼다.
여유가 있으면
한 해 동안 아이들과 놀아주지 못한 아빠들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
미술관에가서 아이들과 바닥에 앉아서 그림을 감상하고
자신의 느낌을 이야기해주고
미술관에서 제공하는
각종 만들기 자료들로 부족했던 자녀와의 대화를 보충한다.
한적하기 이를데 없는, 우아한척 폼만 잡는
연말 한국의 미술관 풍경과 비교해
정말 부러운 모습들이 박물관과 갤러리 곳곳에 펼쳐진다.
그리고
가족들이 함께 쇼핑한다.
명품상점이 즐비한 런던의 옥스포드스트리트, 만체스터의 트라포드센터 등은
한해동안 눈여겨보고 찍어두었던
상품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새벽부터 줄을 서있는 상점들도 많다고 한다.
물론 아이들 장난감 숍도 인산인해다.
직접 목격한 런던의 옥스포드스트리트 쇼핑가는
마치 서울의 주말 강남역 주변처럼
발디딜 틈이 없다.
그런데 재밌는건 영국인들을 보기가 쉽지 않다는점.
대체로 프랑스와 스페인, 이탈리아, 그 외 유럽에서
다들 이곳 런던으로 몰려든다.
그 만큼 싼건지 좋은 상품이 많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왕년의 대영제국의 수도 답게
완전 짬뽕 인종들의 전시장이다.
12월 20일 즈음해서
학교의 모든 행정은 스톱한다.
거의 3주 정도 쉰다. 엄청난 휴가다.
돈이 있으면 유럽으로 여행을 간다고 한다.
아닌 경우 12월 26일 boxing day를 기점으로
필요한 생필품들을 싸게 사는 재미로 휴가를 보낸다.
복싱데이는 우체부 아저씨에게 선물을 주는 날이라는 의미로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마치 공장에서 복스를 개봉해서
대 바겐세일을 한다는 의미로 느껴질만큼 모든 상점들이 값싸게 물건을 내놓는다.
올 연말에는
이라크의 후세인이 처형을 당해서
런던 시내에서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예전처럼 엄청난 불꽃놀이와
거리의 네온사인 등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이 꾸며졌다.
항상 절약하고 검소한 영국인들에게
연말과 새해 한 달은 분명 알지못할 희열을 전해주는 시기이다.
굳이 경제원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소비하고
또 다시 1년을 노동하고
휴식하고...
그래서 제 아무리 세일 천국이라고 하지만
흥청망청이라는 단어는 이곳 영국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